매년 U.S. 오픈 챔피언이 세계 랭킹 25위 이내의 선수들 사이에서 탄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 우승자 J.J. 스펀 역시 대회 직전 데이터 골프(Data Golf) 기준 25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2014년 마르틴 카이머가 세계 랭킹 32위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 25위권 밖 선수가 거둔 마지막 우승이었다. 14개의 클럽 모두를 정교하게 다뤄야 살아남는 이 내셔널 타이틀 무대는,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보통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비거리의 이점이 다소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물론 괴력의 우승자가 탄생했던 2020년 윙드풋의 사례는 예외로 두자).
특히 올해 무대인 시네콕 힐스(Shinnecock Hills)는 USGA가 자랑하는 최고의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어웨이를 놓치는 순간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불규칙한 라이, 미세한 고도 변화, 빠르고 굴곡진 그린은 핀에 공을 바짝 붙이는 것 자체를 고역으로 만든다.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자주 그린을 놓치거나, 훨씬 먼 거리에서 롱 퍼트를 남겨두게 될 것이다. 결국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스크램블링 능력과 퍼트 거리감이 이번 대회의 성패를 가른다. 한마디로 가방 안의 모든 클럽을 완벽히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목요일에는 65% 확률로 비가 예보되어 있고, 대회 기간 내내 시속 15~20마일의 끈질긴 바람이 불며, 토요일에는 무려 27마일의 돌풍까지 몰아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주 U.S. 오픈의 판도는 어떻게 예측해야 할까? 나는 드라이버 정확도와 최근의 볼 스트라이킹 지표, 그리고 과거 U.S. 오픈에서의 성적표에 집중했다. 두세 달 전 반짝했던 선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폼이 절정에 달해 있고, 이 험난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낸 선수들 말이다.
1~10위: 흔들림 없는 최강자들 1. 스코티 셰플러 | 2. 존 람 | 3. 로리 매킬로이 | 4. J.J. 스펀 | 5. 러셀 헨리 | 6. 애런 라이 | 7. 패트릭 캔틀레이 | 8. 크리스토퍼 레이탄 | 9. 패트릭 리드 | 10. 저스틴 로즈
셰플러, 람, 매킬로이 같은 늘 보던 이름들이 최상단을 차지한 건, 단순하지만 그들이 최고의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매킬로이의 아이언 샷감은 표본이 적긴 해도 확실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람이 우승하려면 드라이버 샷을 더 날카롭게 다듬어야겠지만, 페어웨이를 지키기 위해 비거리를 줄이는 영리한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 디펜딩 챔피언 스펀은 방어전을 앞두고 딱 맞춰 폼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레이탄은 최근 한 달간 투어 최고의 어프로치 샷을 구사하고 있다. 2018년 이곳에서 공동 10위를 기록했던 로즈도 내 예측 모델에서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퍼터가 너무 차갑게 식어버린 게 흠이다.
11~20위: 언제든 우승컵을 들어 올릴 저력 11. 토미 플릿우드 | 12. 윈덤 클락 | 13. 캐머런 영 | 14. 저스틴 토머스 | 15. 루드비그 오베리 | 16. 알렉스 피츠패트릭 | 17. 김시우 | 18. 티럴 해턴 | 19. 매트 피츠패트릭 | 20. 샘 번스
바이런 넬슨 우승, 메모리얼 3위, 그리고 최근 캐나다에서의 눈부신 활약까지 종합해 보면 지금 당장 세계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건 윈덤 클락이라고 주장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그가 퍼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퍼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캐머런 영의 발목을 무겁게 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숏 퍼트다. 피츠패트릭 형제 중에서는 동생 알렉스에게 더 눈길이 간다. 투어 카드를 획득한 이후 시그니처 이벤트에서만 세 번이나 탑 10에 들 정도로 기세가 매섭고, 무엇보다 아이언 플레이가 형보다 한 수 위다. 번스는 3월 중순 이후로 전반적인 게임 내용이 아주 견고해졌다.
21~30위: 불안 요소와 폭발력의 공존 21. 호아킨 니만 | 22. 니콜라이 호이고르 | 23. 잰더 쇼플리 | 24. 브룩스 켑카 | 25. 셰인 로리 | 26. 앤드류 노박 | 27. 이민우 | 28. 빅토르 호블란 | 29. 크리스 고터럽 | 30. 애덤 스콧
쇼플리가 메이저 4개 대회 연속 탑 12에 들며 강한 면모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로니밍크나 다른 최근 대회에서 뽐냈던 훌륭한 어프로치 스탯을 시네콕에서 그대로 재현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이 순위도 그를 꽤 보수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켑카도 마찬가지다. 왼손 마비 증상이라는 부상 우려만 없었다면 15위 안에는 거뜬히 들었을 것이다. 노박은 숏게임과 퍼팅에서 타수를 잃어 성적이 아쉽긴 해도, 메이저 무대에서 점점 편안함을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여전히 최상급이라 믿고 가볼 만하다. 호블란 역시 노박과 비슷한 결을 보이며, 이민우는 2023년 공동 5위를 기록하는 등 이 대회에 유독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31~40위: 기적의 서사, 그리고 한 방을 노리는 다크호스들 31. 브라이슨 디섐보 | 32. 버드 코울리 | 33. 커트 키타야마 | 34. 매버릭 맥닐리 | 35. 조던 스피스 | 36. 게리 우들랜드 | 37. 톰 김 | 38. 콜린 모리카와 | 39. J.T. 포스턴 | 40. 해리스 잉글리시
디섐보는 최근 메이저에서 두 번 연속 컷 탈락의 쓴맛을 봤다. 엉망이 된 아이언 샷과 칩샷을 고려하면 도저히 그를 30위권 이내에 올릴 수가 없다. 키타야마는 U.S. 오픈 무대를 네 번 밟아 단 한 번도 주말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무서운 샷감을 감안하면 5연속 컷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일은 없을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32위에 이름을 올린 버드 코울리(Bud Cauley)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그는 최근 캐나다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하기 전부터 이미 U.S. 오픈에서 통할 만한 탄탄한 세부 지표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단지 이 험난한 전장에 나설 출전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의 RBC 캐나디안 오픈 제패는 올 시즌 골프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긴 드라마였다. TPC 토론토 오스프리 밸리 노스 코스에서 열린 마지막 날, 코울리는 후반 5개 홀에서 버디 4개를 쓸어 담으며 최종 합계 17언더파 263타(최종 라운드 65타)로 맷 피츠패트릭을 2타 차로 따돌렸다. 239번의 출전 만에 이뤄낸 투어 첫 승. 한때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갈 뻔했던 치명적인 교통사고 이후 무려 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코울리의 커리어는 눈부신 재능과 잔인한 비극이 교차한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앨라배마 대학 시절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에 세 번이나 선정되었고, 프로 전향 후 단 11번의 출전 만에 탑 15에 5번이나 들며 Q스쿨 없이 PGA 투어 직행 티켓을 따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2014년 어깨 수술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2018년 6월 1일 금요일 저녁, 메모리얼 토너먼트 컷 탈락 직후 조수석 뒷자리에 타고 있던 그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갈비뼈 6대가 부러지고 폐가 무너져 내렸으며, 왼쪽 다리 골절에 뇌진탕까지. 당시 그가 인스타그램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적었던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초인적인 의지로 같은 해 10월 투어에 복귀했지만, 2020년 후반 부러졌던 갈비뼈가 완치되지 않아 끝내 합병증이 찾아왔고 여러 번의 추가 수술을 받으며 투어를 오래 떠나야 했다.
마지막 파 퍼트를 탭인하고 첫 승을 확정 지은 순간, 코울리의 눈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축하하기 위해 그린 위로 달려오길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기 때문이다. “투어를 떠나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이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시간들을 생각하면… 모두가 함께 있는 바로 이 순간 첫 승을 거둔 게, 마치 완벽한 타이밍처럼 느껴집니다.” 이 피눈물 나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로 시네콕행 티켓을 거머쥔 코울리는 지금 투어에서 가장 두려울 것 없는 선수다.
코울리에 가려졌지만, 톰 김 역시 지난 한 달간 투어 내 탑 10 수준의 날카로운 어프로치 샷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4번의 U.S. 오픈 출전 중 오크몬트에서의 공동 33위가 가장 저조한 성적일 정도로 견고하다. 모리카와의 높은 순위는 의아할 수 있다. 그가 PGA 챔피언십에서 컷을 통과한 건 순전히 퍼팅 덕분이었고, 그의 퍼팅은 역사적으로 늘 기복이 심했으니까. 모리카와가 시네콕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희망은 충분한 휴식으로 컨디션을 회복하고, 특유의 엘리트급 볼 스트라이킹이 다시 돌아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