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시카고를 얼마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다음 주면 시카고 불스가 1996년 NBA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 벌써 30주년이 됩니다. 정규시즌 72승이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세운 이 팀은 여전히 농구 역사상 최고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죠. 하지만 재미있는 건 불스 외에도 1996년은 시카고라는 도시 전체에 있어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는 사실입니다. 워낙 굵직한 일들이 많이 쏟아졌던 해라, 당시의 도시 풍경이나 사건들만으로도 가볍게 열 개 정도의 트리비아 퀴즈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특정 시점의 향수에 젖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명문 구단의 역사적인 ‘오늘’로 시선이 옮겨가기 마련입니다. 보스턴 셀틱스의 골수팬이라면 오늘이 구단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본능적으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1984년 NBA 파이널 7차전에서 숙적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111-102로 꺾고 통산 15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날입니다. 경기 막판 레이커스가 3점 차까지 턱밑 추격을 해오며 숨 막히는 긴장감을 연출했지만, 보스턴은 그 압박을 기어코 뚫어냈습니다.
당시 코트 위의 열기는 지표만 봐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세드릭 맥스웰이 24득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공격의 선봉에 섰고, 데니스 존슨이 22득점 6리바운드로 뒤를 든든하게 받쳤죠. 물론 래리 버드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리그에서 가장 거대한 무대에서 만난 두 팀의 8번째 맞대결에서 파이널 MVP를 거머쥐었습니다. 참고로 이 8번의 굵직한 파이널 시리즈를 모두 보스턴이 가져갔다는 게 두 팀의 라이벌리에 묘한 긴장감을 더합니다. 여기에 로버트 패리시가 14득점 16리바운드로 골밑을 지배했고, 벤치에서 출전한 대니 에인지와 케빈 맥헤일이 각각 10점씩을 보태며 완벽한 신구 조화를 보여줬습니다. 이 우승은 셀틱스가 1966년 이후 무려 18년 만에 홈구장에서 확정 지은 타이틀이라 보스턴 팬들의 열광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승리의 달콤함이 늘 코트 위에 머물면 좋겠지만, 프런트오피스의 시계는 다소 냉혹하게 흘러가곤 합니다. 1990년 여름, 셀틱스가 크리스 포드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앉힌 것도 딱 이맘때 일어난 주요 사건입니다. 전임자였던 지미 로저스가 그해 봄 뉴욕 닉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책임을 지고 짐을 싸면서, 코치진에 있던 포드가 지휘봉을 넘겨받게 된 겁니다. 포드는 5시즌 동안 팀을 이끌며 정규시즌 222승 188패(승률 .541), 플레이오프 13승 16패(승률 .448)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팀의 전반적인 하락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고, 사실 그의 지도력보다는 팀의 노쇠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95년 5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역사의 톱니바퀴를 조금 더 먼 과거로 돌려보면,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름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1983년 오늘 코트 밖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 아돌프 찰스 “더치” 호퍼입니다. 192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농구 초창기의 거친 코트를 누볐던 개척자였습니다. 퀸즈 칼리지를 거쳐 NBA의 전신인 미국농구협회(BAA) 출범 첫 시즌,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토론토 허스키스와 계약하며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호퍼는 셀틱스 유니폼을 입고 평균 5.3득점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 정든 코트와 작별했습니다.
불스의 72승이 주는 묵직한 존재감부터, 피 튀기던 레이커스와의 파이널 7차전, 벤치와 감독석을 오갔던 인물들의 굴곡진 커리어, 그리고 초창기 리그의 기틀을 다졌던 이방인 선수의 쓸쓸한 퇴장까지. 코트 위의 시간은 저마다의 속도로 흩어져 있는 듯해도 결국 농구라는 거대한 텍스트 안에서 묘하게 하나의 궤적으로 이어집니다. 승패의 선명한 기록 그 너머, 파편화된 이야기들을 이렇게 하나씩 엮어보는 것 자체가 스포츠가 우리에게 허락한 꽤 근사한 유희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