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한승백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칼럼] KBL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 무엇이 문제인가
KBL도 국제 노동기준 따라야
 
[SPORTIAN] 한승백 칼럼리스트 기사입력  2018/04/09 [20:43]

▲ 신장 재측정을 하는 찰스 로드 선수 <출처> KBS뉴스     © [SPORTIAN]


[SPORTIAN=한승백 칼럼리스트] KBL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선발 규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2018~2019시즌에 뛰게 될 외국인 선수는 “자유계약으로 선발하되 장신 선수의 경우 200㎝ 이하, 단신 선수는 186㎝ 이하”의 제한된 신장 범위에서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 

KBL의 바뀐 외국인 선수 선발 규정에 대해 비판하는 많은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농구팬들 역시 분노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 KBL 총재를 비롯한 집행부의 현실 인식에 대한 비아냥거림 정도가 전부이다. 문제의 원인을 행정가의 능력 부재로 돌리면, 언제든지 이런 일은 반복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KBL의 외국인선수 신장 제한 제도의 문제를 "국제 스포츠 시장" 그리고 그곳에서 활약하는 "운동선수의 노동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스포츠는 이윤창출을 위해 이루어지는 비즈니스이고, 구단은 경기를 생산하는 기업이며, 선수는 경기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노동자이다. 다만 직업 운동선수를 노동자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1항).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선수는 임금을 목적으로 경기장이란 사업장에서 운동이란 노동행위를 제공하는 명백한 노동자이다. 그리고 지구화의 시대, 국경을 가로질러 세계 각국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을 우리는 이주노동자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나무위키 '보스만 판결'     © [SPORTIAN]


운동선수의 노동자로서의 법적지위를 인정했던 대표적 사례가 그 유명한 ‘보스만 판결’이다. 1995년 벨기에의 한 축구팀에서 뛰던 장자크 보스만은 계약기간 만료 후 프랑스 팀으로 이적을 원했다. 그런데 원소속 구단에서 이적료를 요구하자 그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건다. 그 결과 '첫째, 계약이 끝난 선수는 구단의 동의와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고, 둘째, 팀 내 외국인 선수의 숫자는 제한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에 따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들은 노동자로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 받게 되었고, 세계 유수의 프로축구리그들은 소위 리그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던 외국인 선수의 출장 쿼터제를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2003-2004시즌 무패 우승이란 위업을 달성했던 아스날의 주전 스쿼드 11명이 모두 외국인 선수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보스만 판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KBL의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조치를 운동선수는 노동자, 외국인선수는 이주노동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몇 가지 포인트를 포착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의 운동선수가 미국에서 선수로서 활약하는데 키, 피부색, 연령 등의 이유로 선수활동에 제약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차별적 조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국선수의 자격을 키로 제한하면 신체적 조건을 매개로한 노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엄연한 외국인 차별 조항이 된다. 외국인 선수의 신장을 제한한다는 발상은 스피드 농구를 추구함으로써 국내리그의 흥행 도모하고, 장신 내국인 선수를 육성하는 등의 목적에서 단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노동시장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프로스포츠 리그만 따로 존재할 수 없다.

 

혹자는 "농구에서는 키가 수행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예외로 간주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KBL 이사회가 아무리 리그를 보호하기 위한 척화적인 내규를 내 놓더라도 그 상위법인 국제사회의 노동법의 영향력 아래 있고, 우리가 체결한 그 수많은 FTA 조약에 일일이 “한국의 프로농구 시장에서 종사할 이주 노동자 선수의 경우, 협회는 임의로 신장제한 규정을 둘 수 있다.”라는 예외 규정을 명시하지 않는 한 이번 조치는 근거 없이 단행되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다만 누군가 이 문제에 대해 법적 분쟁화를 추진하지 않을 뿐이다.

 

▲ 인기가 시들고 있는 프로농구 <출처> KBS뉴스     © [SPORTIAN]


또 한가지 포인트. 이번 사태로 KBL 의사결정 과정의 후진성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나는 이 규정을 밀어 붙였다고 알려진 김영기 총재 개인의 판단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를 일으킬 인사가 언제든지 다시 총재직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사적 개인의 괴기한 생각이 공적 조적에서 여과없이 관철될 수 있는가'이다. KBL은 총재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고, 수 많은 팬들이 리그의 운영을 감시하고 있으며, 리그 운영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이사회가 있지 않은가. 이런 괴기스런 규정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이사회의 본연의 임무는 리그에 대한 주요한 의사결정권을 갖고,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리그의 독립성을 지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리그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을 것이다. 또한 선수와 구단, 리그 운영 상의 갈등을 중재하는 것도 이사회의 몫이다. 그런데 한국 프로스포츠의 이사회는 대부분 각 구단의 구단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구단의 이해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과연 중립적 위치에서 그 본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외국인 선수 신장제한 이라는 규정이 여과없이 결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를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의 역할에 대한 방기가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 일 것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코미디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 외국인선수 신장제한과 같은 괴상한 규정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선 다음 몇 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우선, 한국 프로스포츠 시장은 고립된 리그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의 한 부분 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제적 표준에 따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구단주로 구성된 이사회는 총재를 견제하고, 구단과 선수의 중재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이사회는 중립적 위치에서 선수와 구단을 중재하고, 총재를 견제할 뿐 아니라 리그 발전을 위해 여론을 수렴하며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리그를 보호할 수 있는 소신있는 외부전문가로 선임되어야 할 것이다.

한승백 칼럼리스트 I yakolars@naver.com


<저작권자 ⓒ 스포티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8/04/09 [20:43]  최종편집:
ⓒ 스포츠인이 만들어 가는 스포츠 신문 스포티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 목록